만추의 계절에 찾아갔었던 부석사에서 만난 소국 몇송이가 서리를 뚫고 샛노랗게 피어있었던 기억이 났다.
의상은 중국으로 유학을 가 있으며 사모했던 여인 선묘를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선묘는 의상을 잊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의상의 귀국길을 지켰고,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많은 위험으로부터 의상을 보호했다는 스토리가 전해오는 부석사가 나는 이유를 모르게 좋았다. 화려한 건축물이 있어서도, 유명한 벽화가 있는것도, 교통편이 좋은 것도 아닌 부석사가 좋은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는없으나, 나는 부석사가 참 좋다.
대학시절, 나의 전공은 컴퓨터였으나 나와는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학후 오래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후로 교양필수로 들어야 했던 불교예술이라는 과목을 만나며 나의 대학시절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과 교수들은 안만나도 불교대교수들은 다 알고, 특히나 불교예술을 가르쳤던 노처녀 교수님과 소울이 통하게 되어, 그분과 함께 사찰을 돌며 가람에 깃들여 있는 예술품들의 사진을 찍고, 강의자료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학교에 가는날에는 학교안에 있는 절에서 하루종일 명상을 한답시고 멍때리고 앉아있기 일수였던 나는 제법 많은 절들을 돌아다녔었다. 당시 나는 실제로는 부석사를 가본적이 없었다. 대표할 만한 예술품이 배흘림기둥 하나뿐이였기에 아마도 명단에서 제외되었던거 같다.
그런데, 미국에 이민을 오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나는 부석사가 그리웠다. 이유없이 그곳이가슴아프게 그리웠다.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왔다. 당시 미국에서 살며 대한항공에서 잠깐 일을 하고 있어서 직원들에게 공짜표를 세금만 내면 이용할 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아이 학교 수업을 빼고 당일 저녁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주 몹시 갑자기 추워진 11월 중순의 어느날이었다.
새벽 버스를 타야하는 딸아이는 투덜댔으나 이내 버스에서 잠이 들었었고, 부석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심장이 터져버릴것만 같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그렇게 읍내에 도착해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려 타고 부석사에 도착할즈음은 하늘이 게이면서 햇님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일주문이 몇발자국 앞에서 보이기시작할 무렵 나는 탄성을 쳤다. 길가에 서리를 뚫고 피어있는 소국 몇송이를 발견했기때문이었다. 몇송이 안되는 그 소국의 향이 얼마나 진하고 깊은지 그 소국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고 또 보고 바라보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리는 어느새 다 사라지고 그냥가기 아쉬워 사진한장을 찍었다. 그 향을 담을 수 없음에 많이도 안타까웠다.
그렇게 일주문을 통과하고 산지가람의 형태인 부석사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르고 올라 만난 팔작지붕의 처마끝에는 의례처럼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하나 달려있었다. 풍경소리를 들으며 앉아있기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나는 그 자리에 아주 오래도록 앉아서 풍경소리를 듣고 또 듣고 싶었다. 아이가 지루해 해서 더이상 앉아있을 수 없을만큼 앉아있다 무량수전으로 발길을 돌리는 내 마음은 또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게 만난 무량수전의 황금비율은 건축학적으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마치 선묘아씨가 학으로 환생해 포근히 감싸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무량수전을 보고 앉아있노라면, 이렇게까지 절절한 사랑이 떠 어디 있으랴 싶다. 꼭 있어야 하는 것만 있는 무량수전의 건축양식은 절제된 의상의 삶을 보는 것도 같고, 못이룬 사랑을 승화시킨거 같은 느낌도 든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배흘림기둥은 또 어떠한가.
계속해서 오르는 느낌이 드는 이 팔작지붕의 아래를 지나면서, 나는 인생을 논한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결국 나 자신뿐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맞배지붕은 또 팔작지붕을 보았을때의 그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제와서야 나는 팔작지붕보다 이 맞배지붕이 더 좋아진다. 나는 왜 사는가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이었던 30대 후반의 나와,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한 40대 후반의 나는 취향도 달라졌나보다.
나는 마지막으로 부석사를 떠나오며 이 단풍을 마음에 담아왔다. 이파리 두개가 나란히 붙어 추운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그 모습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차가운 날씨와 서리, 세찬 바람에도 끝까지 서로 부둥켜 안고 서로의 나뭇잎을 부딪치며 이리저리 흔들렸을 이 단풍을 보니 갑자기 미국에서 고군분투하며 무척이나다투며 살았던 내 남편과 내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결국 바닥에 떨어져 거름이 될 잎파리인데 뭐 그리 안떨어지려 발버둥치나 싶어서.
생각지도 않았던 보도블록 사이에서 피어난 국화를 보며, 그 옛날에 내가 품었던 가슴뛰게 만들었던 사찰들 생각을 하며, 치열하고 반짝였던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내가 나에게 오롯이 더 집중하며, 나다운 것은 무엇인지, 내 취향은 어떤지를 많이 살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에 남는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혼자, 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집중해본다. 차를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적어보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내 취향의 음악, 사람, 냄새, 풍경, 느낌, 소리, 촉각, 내 몸의 탐색및 반응등을 통해 매일 새롭게 나를 발견해가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루를 행복한 하루를 맞이한다. 이글을 읽는 분들도 하루에 잠깐이라도 나에게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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